선조들의 발걸음을 지탱한 짚신
요즘 전통 짚신(草鞋)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대부분 직접 신어본 적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에는 흔한 물품이었지만 지금은 전통 공예품 판매점 이외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죠. 하나 짚신은 과거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가장 친근한 물품이었습니다. 볏짚이나 삼베, 칡줄기 등을 엮어서 만든 우리나라의 전통 신발 ‘짚신’. 그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삼국시대 유적에서도 짚으로 엮은 신발의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짚신은 서민들이 가장 흔히 신었던 신발로 자리 잡았습니다. 양반들은 가죽으로 만든 화(靴)나 목(木)으로 만든 나막신을 주로 신었습니다. 반면, 서민들은 짚신을 주로 착용했죠. 무엇보다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제작 방법도 비교적 단순해 손쉽게 만들어 신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짚신으로 길흉화복 점치기도
짚신은 단순한 신발을 넘어 우리 선조들의 민속 신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해요. 조선 시대에는 짚신과 관련된 다양한 속설과 금기가 존재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짚신을 거꾸로 놓으면 집안에 불행이 찾아온다’는 설화입니다. 이는 짚신이 길흉을 점치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 짚신을 신고 떠나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며,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짚신을 선물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짚신을 삼아준 효자 이야기’도 짚신과 관련한 설화가 있죠. 한 효자가 병든 어머니를 위해 매일 약초를 구하러 먼 산을 오르내렸는데, 어느 날 신발이 닳아 맨발로 다니게 됐다고 해요. 이를 본 이웃들이 짚신을 삼아 선물하였고, 그 덕분에 그는 어머니를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짚신은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우리 민족성과 정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곡창지대서 주로 생산된 짚신
짚신은 주로 농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많이 제작됐습니다. 짚신의 주재료가 볏짚이니까요.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곡창지대에서는 볏짚이 풍부하여 짚신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경상북도 안동과 전라남도 나주 등에서는 과거에도 짚신을 짜는 장인들이 많았으며, 현재도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 방식을 계승하여 짚신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짚신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볏짚을 고르고 물에 불려 유연하게 만든 후, 이를 여러 가닥으로 꼬아 밑창과 끈을 엮습니다. 발의 크기에 맞춰 일정한 형태로 다듬고, 마무리로 끈을 조정하여 발을 고정시킵니다.
짚신은 자연재료로 만들어 통풍이 잘 되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지만, 내구성이 약해 쉽게 닳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짚신이 닳을 때마다 새로 만들어 신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전통 짚신,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 전통 짚신과 유사한 신발은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볏짚, 삼베, 칡줄기 등의 식물 섬유를 이용해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역적 특성과 문화적 차이에 따라 형태와 기능이 다소 다릅니다.
한국의 짚신은 발등을 덮지 않고 발가락 부분이 드러난 형태로, 끈이 짧고 간결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의 와라지(草鞋)는 끈이 길어 발목까지 묶는 형태로, 주로 승려나 사무라이들이 신었습니다.
중국의 초혜(草鞋)는 짚신과 유사하지만, 지역에 따라 재료가 다르고 갈대나 대나무 섬유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농민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신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습니다. 베트남의 구어(Huỳnh) 역시 볏짚으로 만들었지만, 동남아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맞춰 통기성이 더욱 강조된 디자인을 가졌습니다.
짚신은 사라졌지만 문화유산은 그대로
현대에 들어 짚신을 신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지만,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전통 공예 장인들은 짚신 제작 기술을 보존하고 있으며, 짚신을 단순한 신발이 아닌 전통 장식품이나 예술 작품으로 활용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통 공예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실내 장식용 짚신이나 미니어처 형태로 제작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짚신이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습니다.
짚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담긴 문화유산입니다. 그 안에는 자연을 활용하는 실용적인 지혜, 효도와 정성의 정신, 그리고 삶의 애환과 희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짚신이 현대인의 생활에서는 사라졌지만, 전통문화로서 그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카테고리 없음